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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해]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봉하마을 지금 그곳은

화이트1 2010. 12. 26. 16:10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봉하마을 지금 그 곳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앞두고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어버이날도 나보다 더 바쁘신 부모님들로 인해 찾아 뵙지 못하고

연휴를 맞이하여 온 가족들이 전부 부모님댁에 모였다.

그리고 나들이를 계획하다가 마침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앞두고 있기도 해서

모두들 봉하마을을 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하시고 봉하로 오시고 일주일 쯤에 봉하마을을 가보자고 했을 때는

아버지는 단호히 싫다고 하셨기에 이번에도 혹시 안간다고 하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너무나도 흔쾌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 그 분이 가고 나니 비로소 그 사람의 진정성과 더불어 뒤늦은 후회가 드는 건 모두가 한마음인듯하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향하고 있다.  

 

봉하마을 입구 작은 연못엔 백로 한 마리가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살아 생전 화포천 가꾸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했는데

그 덕분으로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니 1년만에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기쁜 마음이 앞선다.

 

차가 너무 많이 막혀 땡볕이 내려쬐는 오후 2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작년 5월 23일 아침... 그 분께서 가셨다는 믿기지 않는 뉴스가 방송되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그 땐 내 개인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기였고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부정적인 일이라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죽음은 내 문제와 얽혀 한동안 많이도 힘들어했었다.

뭐 비단 나 뿐이겠는가?

그를 지지 하지 않았던 지지했던 이상하게도 눈물이 흐른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시간이 참 느리고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짧다면 짧은 일년인데 몇 십년이나 후퇴한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약 20분을 걸어 도착한 봉하마을, 이전의 노사모 회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은 추모기념관이 되었다.

추모관 옆 벽면의 LCD 화면에선 끊임없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육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추모 기념관

 

기념관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이고 소탈했던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념 스탬프도 찍어주고 계신다.

 

 

추모관 안의 모습

 

 

 

 

 

 

 

 

마을회관에는 추모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마을회관 안의 모습

 

 

봉하마을 길가에는 여전히 그를 향한 마음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추모기념관을 둘러보고 마을회관을 둘러보고 대통령 묘역을 향해가면서 보니 방앗간이 생겨 있었다.

이 방앗간은 시간당 1.5t의 도정 능력을 갖춘 미곡종합처리장(RPC)인 친환경쌀 방앗간이라고 하며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로 오시고 난 뒤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 쌀 농사는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26만4500여㎡ 넓어진 105만7800여㎡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 분이 가고 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가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여전히 대통령을 닮아 바보같은 사람들이 그 모든 일을 하나 하나  잘 해나고 있는 듯하다.

 

사저앞에 도착하니 복원된 생가가 보인다. 그리고 그 멀리 1년전의 아픔을 간직한 부엉이 바위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생가는 본채(37.26㎡)와 아래채(14.58㎡)를 갖춘 초가로, 장독대와 포도밭, 대나무 문까지 노 전 대통령의 기억에 따라 복원했다고 한다.

‘단지 둘러보고만 가는 박제품이 아니라 생활이 가능하고 손님이 오면 차 한잔이라도 대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던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본채 방 안에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시설도 설치했다고 하는데

이제 주인이 없으니 차는 누가 대접해 줄까 싶어 가슴이 짠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생가을 둘러보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태어난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박한 곳,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이 공간에서 우리는 그 분이 대접하는 차를 마시고 있었겠지...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방명록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는 없던 새로운 시설들도 많아졌다.

생가 옆에는 아름다운 봉하 가게가 들어서  방문객들에게 기념품과 노 전 대통령 회고록 등을 팔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책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각종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청화대를 방문하니 노무현 대통령 친필이 적힌 열쇠고리를 기념품으로 받았는데

작년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핸드폰과, 그 기념열쇠고리가 달린 아파트를 키를 잊어버렸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는다.

 

나도 이곳에서 그의 자서전 '운명이다' 와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이 새겨진 연필을 기념품으로 구매를 했다.

요즘 노트에 이런 저런 글을 많이 적고 있는데 유용한 기념품이 될 듯하다.  

 

봉하마을로 돌아오시고 나서 사저 앞 까지 가볼 수 있었는데 이젠 이렇게 막혀 있어 도로에서 사저 풍경만 볼 수 있도록 되었다.

 

대통령님 묘역을 지나 봉화산 정토원에 올라본다

 

 

1년전의 그날이 가슴 시린 부엉이 바위

 

봉화산을 오르니 새롭게 조성된 묘역이 한 눈에 잘 보인다.

 

봉화산을 오르는 길 마애불이 누워계신다.

원래는 앉아 있던 불이었으나 바위가 무너져 이렇게 누워있는 형상이 되었다

 

산 언저리에 서니 아직까지 슬픔에 휩싸여 있을 사저의 지붕이 무겁게 내려앉은 듯하다.

 

가파른 고개길을 약 20여분을 올라 정토원에 도착하니 더운 날씨에 땀이 비오듯한다.

아버지도 힘들게 이곳까지 오르셔서 무리가 되는건 아닌지 내내 걱정이 되었으나

내심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셨다.

 

그리고 법당안 한 켠엔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함께 나란히 모셔져 있어 가슴이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봉화산을 내려와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을 돌아본다.

이 봉화마을과 어울리게 가설건축물로 지어져있다.

 

 

입구에는 그의 일생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추모의 집의 내부 모습...

바보 노무현이 우리를 먼저 반긴다.

 

대통령님과 관련된 각종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때 걸렸던 현수막들이 한곳에 차곡차곡 놓여져있고

 

그가 즐겨타던 자전거, 이 자전거는 손녀를 태우고 다녔던 자전거인듯하다  

 

그리고 밀집모자,,,, 소박한 농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재임시절의 사진들과

 

 

과거시절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지켜드리지 못한 뒤 늦은 후회가 밀려드는 건 역시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그 분을 향한 자그마한 촛불 하나로 마음을 달래본다.

 

 추모 기념관 앞마당에는 잊지 않겠다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리고 봉하마을에는 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대통령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지지했던 정당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했다.

나를 따랐던 정치인들은 몇 몇을 빼고 대부분 선거에서 떨어졌다. 오래 나와 함께 일했던 참모들 태반이 실업자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있는 것 같았다. 시민으로서 성공할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현직에서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사랑받고 싶었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훌륭한 시민으로 살고 싶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남들은 성공한 인생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은 엇이고 실패는 또 무엇인가?

무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따지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 제어하기 힘든 분노와 열정에 사로잡혀 피할 수도 있었던 상처를 받거나

입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 쳤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쨋든 나는 작은 흙집에서 났고, 거기에 새로 지은 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집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이글은 2010년 5월 23일 다음 베스트 및 인기글에  선정되었습니다.

 

 

 

 

Posted by 작은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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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작 은 천 국
글쓴이 : 작은천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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