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보기

[스크랩] 기산 詩歌碑 소공원 ( 에 세워질 최종안의 시들 )

화이트1 2008. 9. 16. 09:28

 

 

詩歌碑 공원

 

리 마을은 장흥군에서 공모한  "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팔문장 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 살다 가신 선현들의 업적을 기리고 유서 깊은 유적들을 복원, 보존하는 과정에서, 팔문장을 비롯한 제현들의 시가비를 건립하여 소공원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1977년 새마을 사업 당시 故 백낙형님이 마을회관 부지로 희사해 주셨던 땅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번에 그 분의 장자 백인천님이 ‘낙원거사 행적비’ 주변 부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부지에  장흥군으로부터 상금으로 받은 사업지원비, 마을 자부담금 등을 보태 이 공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용산면 출신 靈光人 洗石軒 金圭錠님은 문집 등 긴요한 자료들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 중앙도서관, 한국고전번역원 등에서 어렵게 찾아 보내 주셔서 크게 도움이 되었고,

한시 번역은  문학박사 백수인 조선대학교 교수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팔문장 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해 오는 동안 아무 조건 없이 토지사용을 승낙해 주신분들과  온 정성과 사랑을 함께 나누어 주신 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본 詩歌碑공원 조성에 도움을 주신 분들의 공로와 우리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그 뜻을 새겨 이 비를 세웁니다.

2008년 9월  일

 

기산마을 주민 일동 

                                                                                              

  (마을 어른들을 설득시켜서 김규정님께서 주신 큰도움을 표기하기로 ,일부의 표기를 크게로 고쳤습니다,)

정리한 원글을 주내용으로 백 수인 교수님께서 문법에맞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八文章  문화마을

 

 

獅子山 南麓 가마등 (鼎嶝) 아래 자리한 우리 마을은

당대 八文章 輩出로 長興에 一岐山이라 전해 오고있다

 

鳳鳴齋

 

우리마을 古有書齋로 많은 鴻儒碩學을

배출 하였으며 興學契를 설립 유지하여 왔으나 勢不得己

철거하고 遺虛碑가 있다,

 

八文章

 

조선조 중엽 (1500 연대)에 남계 金胤 서곡 林賁 죽곡 林회

기봉 白光弘 동계 白光城 풍잠 白光顔 옥봉 白光勳

지천 金公喜 等 八賢이며 기양사에 配享되셨고

繼出名儒하니 조선조 후기 梧堂 盧瓘은 사마에 등제 되셨고

孝星祠에 配享하셨으며

明岡  白奉欽은 訓長으로 著世하셨다

 

慶宴臺

 

參判 白繪의 네 아들이 登科함으로 마을뒤 광장 (진챙이)에

築臺하여 경연을 베푼 곳으로

八文章 또한 이곳에서 경연을 하였으므로  文章臺 라고도 한다

近世에 까지  마을 民俗놀이 祭典場으로 이용하여 왔으나

현재는 사유화 되고 경연대 碑가 그 흔적을 전하고 있다

 

특히 조선 팔문장 岐峰 白光弘이 지은 關西別曲은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로써 조선조 이후 모든 기행가사 문학의 

모체라 한다

 

이러한 선현들의 명예로운 문화유산의 연유로

팔문장 문화마을  가꾸기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선현들의 遺址를 보존하고  길이 전 하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2008년 9월

 

글을 지으신분은 월송  白 南植 님 이십니다,

본인의 극구 사양으로 비문에는 글을 지으신 분의 성함을

적지 않기로  결정 되었습니다,

 

 

 

비가 세워질 한시와 번역문입니다,

 

문득 떠오른 시 (우연히 짓다)


                                                   동계  백광성


가을날 맑은 물을 내 정신으로 삼고, 옥을 내 비장으로 삼으니

대 바람, 매화 달은 내 시 속에 담겨지네.

시내 동녘은 흥하고 발전하여 보기 좋다는데

누가 내 스스로 영원히 떠나온 강 북녘을 알기나 할까.


偶題

秋水爲神玉作脾   竹風梅月入新詩

溪東謂興長相好   洛北誰知自永離


동계(東溪) 白光城(1527-1595) 명종 16년 사마시에 급제했다.

송강, 일휴당과 사귀었고 학포의 문하생이었다.

벼슬을 버리고 동계에 정자를 짓고 지내며 교육에 힘썼다.


 

동강 난 배 안에서

 

                                 남계  김윤

 

드높이 솟구치는 거친 파도 너무 무정하고

동강 난 배 안에 흐르는 목숨 너무 가냘프네.

글을 버리기 어렵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는데

강신들은 바쁘게 하늘의 심판을 부르네. 


舟折中


排空濁浪太無情   舟折中流命旣輕

始覺文章難棄擲   江神奔走叫天庭


남계(南溪) 金胤(1506-1571) 영천은 자신의 학문을 이을 사람은 윤과 분이라고 했다.

선조 3년 사마시에 급제, 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충의

   -‘숭정통보’에 화운함


                                    오당   노관


한 잎 푸른 느릅나무 잎새가 자기 몸을 보호하고

당당히 충성과 의리로 마음껏 봄을 드러내네.

황실의 옛 이름 홀로 존경하고 아끼는

그대 참된 성품 우러러 부럽소.


忠義 

     -崇禎通寶和韻


一葉靑楡保一身   堂堂忠義露心春

皇朝舊號獨尊愛   景慕吾公性任眞


梧堂 盧瓘(1797-1882) 성균진사를 지냈다.


 

사자산에 올라


                               명강  백봉흠


평지에서는 산이 가장 높더니

산에 오르니 내가 가장 높네.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내 소원이 아니니

걸어 내려와 높은 자리 양보하네.




登獅子山


平地山爲頭    山上我爲頭

居高非心願    步下讓一頭


明岡 白奉欽( 1859~1909 ) 處士 훈장으로 저명 하였다


 

 

이성주에게 감을 보내며


                                             서곡  임분


바닷가 가을은 빨리 찾아와 산밭에 감이 벌써 붉었소.

동글동글 이슬 빛이 맑고, 알알이 서리가 짙게 맺혔소.

맛은 당신께서 드시기에 알맞고 과육도 당신께 적합할 것이오.

가난한 집에 마땅히 드릴 게 없어 대바구니 가득 채워 보내드리오.


送枾李城主


海國秋來早    山園枾子紅

團團露色嫩    箇箇霜華濃

風味宜尊長    王更漿合相公

貧家無表物    緘送满筠笼


서곡(書谷) 林蕡(1501-1556) 8세 때 태수가 시를 짓게 할 만큼 신동으로 알려졌다.

중종 35년 사마양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나라의 특명으로 정혜군 장례를 집례했다.


 

 

여원에 와서 월출산을 바라보며

              

                                                 옥봉  백광훈


두 해 동안 서울 땅 나그네로 떠돌 땐

꿈에 본 고향 산 얼마나 정겨웠나.

오늘 와 참모습 만나고 보니

꿈일까 두려워 고개를 드네.


到女院望月出山         

二年辛苦客秦城  夢見鄕山別有情

今日却逢眞面目  擧頭猶怕夢中行


옥봉(玉峰) 白光勳(1537-1582) 명종 19년 진사가 되었으나 선조 10년에야 관직에 나섰다.

최경창 이달과 함께 3당시인으로 불렸다. 영화체에 뛰어난 명필로 유묵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서별곡


                기봉  백광홍


관서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시매

행장을 다스리니 칼 하나뿐이로다.

연조문 내달려 모화고개 넘어드니

귀심이 빠르거니 고향을 생각하랴?

벽제에 말 갈아 임진에 배 건너

천수원 돌아드니 송경은 옛나라라

만월대도 보기 싫다 황강은 전쟁터라

가시밭이 우거졌다.

산 해가 기울거늘

말채찍 다시 빼어 구현을 넘어드니

생양관 기슭에 버들마저 푸르렀다.

감송정 돌아들어 대동강 바라보니

십리파광과 만중연류는 상하에 어리었다.

봄바람이 수다스레 화선에 비껴 부니

녹의홍상 비껴 앉아

섬섬옥수로 거문고 이어 타며

하얀 이 예쁜 입술로 채련곡 부르니

하늘 신선 연엽주 타고 옥하수로 내려온 듯

설마 나랏일에 바쁜들 풍경을 어찌하리?

연광정 돌아들어 부벽루에 올라가니

능라도 방초와 금수산 연화는 봄빛을 자랑한다.

천년 기양에 태평 문물은 어제인 듯 하다마는

풍월루에 꿈 깨어 칠성문 돌아드니

세마태 홍의에 객흥이 어떠한가?

누대도 많이 있고 산수도 많건마는

백상루에 올라앉아 청천강 바라보니

삼차 형세는 장함도 끝이 없다.

하물며 결승정 내려와 철옹성 돌아드니

연운 분첩은 백리에 펼쳐있고

천설 중강은 사면에 비꼈구나.

사방 거진과 일국 웅관이 팔도의 머리로다.

배밭에 꽃 피고 두견화 못다 진 때

진영이 무사하니 산수를 보려고

약산 동대에 술을 싣고 올라가니

눈 아래 구름이 바라봐도 끝이 없다.

백두산 내린 물이 향로봉 감돌아

천리를 비껴 흘러 대 앞으로 지나가니

반회 굴곡하여 노룡이 꼬리치고 해문으로 드는 듯

형승도 끝이 없다 풍경인들 아니 볼까?

작약 선아와 선연 옥빈이

운금 단장하고 좌우에 펼쳐 있어

거문고 가야고 봉생 용관을

불리거니 잇게커니 하는 양은

주목왕 요대상에 서왕모 만나 백운곡 부르는 듯

서산에 해 지고 동령에 달 오르고,

녹빈 운환이 반함 교태하고

잔 받드는 양은 낙포 선녀

양대에 내려와 초왕을 놀래는 듯

이 경도 좋거니와 원려인들 잊겠는가?

감당 소백과 세류장군이

일시에 동행하여 강변으로 순하하니

빛나는 옥절과 드높은 깃발은

장천을 비껴지나 벽산을 떨쳐간다.

도남을 넘어들어 배고개 올라 앉아

설한재 뒤에 두고 장백산 굽어 보니

중강 복관은 갈수록 어렵구나.

백이 중관과 천리 검각도 이렇듯 하였던가?

팔만 비휴는 계도 전행하고

삼천 철기는 옹후 분등하니

호인 부락이 망풍 투항하여

백두산 내린 물에 일진도 없도다.

장강이 천참인들 지리로 홀로 하며,

사마 정강한들 인화 없이 할 수 있나?

시평 무사함도 성인의 교화로다.

소화도 쉽게 가고 산수도 한가할 때 아니 놀고 어이하랴?

수항정에 배 꾸며 압록강 저어 내려

연강 열진은 창기 편 듯하였거늘

호지 산천을 역력히 지내보니

황성은 언제 쌓여 황제묘는 뉘 묘인가?

감고 흥회하여 잔 다시 부어라.

비파관 내리 저어 파저강 건너가니,

층암 절벽 보기도 좋도다.

구룡소에 배 매고 통군정에 올라가니,

제향이 어디인가? 봉황성 가깝구나.

귀서할 이 있으면 호음이나 보내곺다.

천배에 대취하여 무수를 떨치니,

박모 한천에 고적성이 시끄럽다.

천고 지형하고 홍진 비래하니, 이 땅이 어디인가?

사친 객루는 절로 흘러 알 수 없네.

서변을 다 보고 반패 환영하니,

장부 흉금이 조금은 나아지리라.

설마 화표주 천년 학인들 나 같은 이 또 보았는가?

어느 때 형승을 기록하여 구중천에 아뢸까?

미구 상달 천문 하리라.

 

기봉(岐峰) 白光弘 (1522-1556) 명종 4년 사마양시에 급제, 홍문관정자를 지냈다.

성균관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명종으로부터 ‘선시 10권’을 하사받았다.

1555년 평안평사를 지내면서 가사 ‘관서별곡’을 지었다.





關西別曲


岐峯  白光弘


關西 名勝地에                 王命으로 보실

行裝을 다사리니               칼  이로다

延詔門 달아                 모화고 너머드니

歸心이 르거니               故鄕을 思念랴

碧蹄에 말가라                 臨津에  건너

天水院 도라드니               松京은 故國이라

滿月臺도 보기 슬타            黃岡은 戰場이라

荊棘이 지엇도다               山日이 半斜컨을

歸鞭을 다시 와              九硯을 너머드니

生陽館 기슭에                 버들죠차 프르럿다

感松亭 도라드러               大同江 보니

十里波光과 萬重烟柳         上下의 어뤽엿다

春風이 헌야               晝船을 빗기 보니

綠衣紅裳 빗기 안자            纖纖玉手로 綠綺琴 니며

皓齒丹唇으로                  采蓮曲 브니

太乙眞人이 蓮葉舟 고        玉河水로 리

셜라 王事靡監           風景에 어이리

練光亭 도라드러               浮碧樓에 올나가니

綾羅島 芳草와                 錦繡山 煙花는

봄비슬 쟈랑다               千年 箕壤의

太平 文物은                   어제론닷 다

風月樓에 여               七星門 도라드니

細馬駄 紅衣예                 客興이 엇더뇨

樓臺도 만고                 山水도 하건마

百祥樓에 올나안             晴川江 라보니

三叉 形勢난                   壯홈도 가이 없다

믈며 決勝亭 려와          鐵瓮城 도라드니

連雲 粉堞은                   百里에 버려 잇고

天設 重崗은                   四面에 빗겼도다

四方 巨陣과                   一國 雄觀이

八道 爲頭로다

梨園의 피고                 杜鵑花 못다 진 제

營中이 無事커늘               山水를 보랴야

藥山 東臺에                   술을 실고 울나가니

眼底 雲天이                   一望에 無際로다

白頭山 린 물이              香爐峯 감도라

千里를 빗기 흘너              臺 압프로 지가니

盤回屈曲야                  老龍이 리치고

海門으로 드난               形勝도 이업다

風景인달 안니 보랴

綽約 仙娥와                   嬋姸 玉鬂이

雲綿 端粧고                 左右의 버려 이셔

거문고 伽倻皷                 鳳笙 龍管을

부거니 니애거니              양은

周穆王 瑤臺上 의              西王母 만나

白雲曲  브난 

西山에 지고                 東嶺의 달 올아고

綠鬂雲鬟이                     半含  嬌態고

盞 밧드 양은                洛浦 仙女

陽臺에 려와                 楚王을 놀닷

이 景도 됴커니와              遠慮 이즐쇼냐

甘棠 召伯과                   細柳 將軍이

一時예 同行야               江邊으로 巡下니

煌煌 玉節과                   偃蹇 龍旗

長天을 빗기 지나              碧山을 쳐 간다

都南을 너머 드러              고 올나 안자

雪寒 뒤에 두고              長白山 구버보니

重岡 複關은                   갈쇼록 어렵도다

百二 重關과 千里 劒閣도       이럿텃 하던도

八萬 犭比㹯                  啓道 前行고

三千 鐵騎는                   擁後 奔騰니

胡人 部落이                   望風 投降야

白頭山 나린 물의              一陣도 업도다

長江이 天塹인달               地利로 혼쟈 며

士馬 精强들                 人和 업시 올쇼냐

時平 無事홈도                 聖人之化로다

韶華도 슈이가고               山水도 閒暇  졔

아니놀고 어이리

受降亭의  여              鴨綠江 리 져어

連江 列鎭은                   창긔 버듯 엿거늘

胡地 山川을                   歷歷히 지보니

皇城은 언제 며              皇帝墓 뉘 무덤고

感古 興懹야                 盞 고쳐 부어라

琵琶串 리 저어              坡渚江 건너 가니

層巖絶壁                      보기도 죠토다

九龍쇼의 를 고            統軍亭의 올나가니

臺隍은 壯麗야               枕夷夏之交로다

帝鄕이 어듸오               鳳凰城 갓갑도다

西歸리 이시면               好音이 보고져

千盃에 大醉야               舞袖를 치니

薄暮 寒天의                   鼓笛聲이 지지괸다

天高 地逈고                 興盡 悲來니

이 히 어듸오

思親 客淚                   졀로 흘러 모로라

西邊을 다 보고                返旆 還營니

丈夫 胸襟이                   져그나 리로다

셜라 華表柱 千年鶴인들      날 가타니  보안난다

어늬제 形勝을 記錄야        九重天의 로료

未久 上達 天門리라

 

기봉(岐峰) 白光弘 (1522-1556) 명종 4년 사마양시에 급제, 홍문관정자를 지냈다.

성균관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명종으로부터 ‘선시 10권’을 하사받았다.

1555년 평안평사를 지내면서 가사 ‘관서별곡’을 지었다.


 

(참고로 관서별곡 원문중,파일에는 고문이 나오지만 복사해오니 고문이 안나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8월7일

음력으로 칠월 칠석날인  오늘 오전 10시에

옥녀봉에 나뒹굴어져  있던 옥녀바위를 원래에 있던 자리에 복원했습니다,

 

설화에는 그밑 수렁논에 쳐 박혀져 있다고 되어 있지만

400년전 소나무가 울창해서 굴러가다가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던것 같습니다

포크레인 03 으로 어렵게 끌고 올라가서 원래의 모양 이었슴직하게 놓고보니영락없는 옥녀의 형태이고

뒤에서보니 곱게 낭자를한 모습의 옥녀였습니다

 

더욱이나 놀라운것은  본래의 밑자리 기반석에 앞은 둥굴고 뒤가 네모난 바위를 올려놓자

아귀가 딱 들어 맞는것이 임목사가 굴려 버렸다는 설화도 낭설은 아닌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옥녀 바위는 밑동과 몸통  그리고 머리부분이 삼동으로 포개진 형태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바위들이 아귀가 들어맞고 모양도 아주 근사하게 놓아졌습니다,

 

보림사 주지스님이신 지묵 큰스님께서 주신 돈으로 돼지머리와 음식을 장만해서

고사를 올리고 미륵사 월인 스님께서 일찍이 오셔서 지신을 달래주시고

동계유사 수장이신 백 양인 님께서 제주가 되셨으며 월송 백 남식님께서 지으신 축문으로 

개발위원장이신 노 현기님께서 축문을 낭독 하셨습니다,

 

축문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오랜 세월동안 옥녀 바위를 방치해둔 사과와 위로

칠석날 날을받아  복원하오니  마을의 발전과 인재보호 그리고 안녕을 비호해 달라는 기원 이었습니다,

 

많은 주민들도  큰 관심을 가지시고 대거 참석하셔서 저마다 기원을 올리기도 하였답니다,...

 

2008년 8월 7일 기산이장 올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9월12일 사업비가 일부 입금이 되어 재무 백남현님이 임금과 재료대 장비대금등을 무통장입금 처리중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장흥 안양 기산마을
글쓴이 : 봉명제 원글보기
메모 :